a책형 기준 2016 지방직 9급 한국사 4번 보겠습니다.
4. 다음 대화에 나타난 수취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갑: 호(戶)에 부과하던 공물을 토지에 부과하게 되면서
땅이 많은 대가(大家)와 거족(巨族)이 불만을 가져
원망을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심히
걱정스럽군.
○ 을: 부자는 토지 소유에 비례하여 많은 액수의 세금을
한꺼번에 내기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 수확과 노동력이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도 여태껏 그럭저럭 납부
해온 것을 왜 못 내겠소?
①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② 농민의 군포 부담을 1년에 1필로 줄여 주었다.
③ 지주에게 토지 1결당 2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다.
④ 농민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두로 고정하였다.
해설
답은 1번입니다.
수취 제도 중 현물을 납부하는 공납에 관한 설명입니다.
공납은 정기적으로 징수하는 상공과 부정기적으로 징수하는 별공이 있고 왕에게 직접 바치는 진상이 있습니다.
공납은 중앙에서는 각 지방 토산물을 조사하여 군현의 토지와 호구 다과를 기준으로 지방별로 할당을 줍니다. 할당받은 토산물을 지방에서는 가호별로 다시 할당하여 백성에게 징수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우선, 전세보다 부담이 훨씬 컸습니다. 두 번째로 현물 납부가 어려웠습니다. 특산물이 바뀌거나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타지역에서 물건을 사서 납부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가장 큰문제인 방납의 폐단이 발생한것입니다. 방납에서의 '방'은 방해하다 할때의 방입니다. 중앙 관청의 서리(하급관리)들과 방납업자들이 짜고 공물을 관청에 납부하고 수려과 결탁하여 지방민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방납입니다.
결국 공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도망가고 지방별로 할당된량은 채워야하니 결국 이웃(인징)이나 족징(인척)에게 대신 부과하면서 더욱 더 백성들이 도망가게 됩니다.
농민이 도망하는것은 장기적으로 국가에게 큰 문제가 됩니다. 농민이 도망하여 도적으로 변해서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도 있지만 결국 국가가 거둬드릴 세금이 줄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대한 대응으로 일부지역의 수령들은 사대동(私大同)을 실시하여 현물 대신 쌀과 포로 징수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부 사림들은 현물 대신 쌀로 징수하는 수미법을 주장합니다.(조광조, 이이, 유성룡)
결국 지속적으로 주장되었지만 양반들의 반발로 막혀있던 대동법이 광해군(1608)에 시작되게 되어 숙종(1708)에 완성되게 됩니다. 무려 100년이 걸린겁니다. 양반들의 반발이 엄청나 지역별로 확대하다보니 100년이 걸리게 된것입니다.
(대동법 시행 기념비)
대동법은 가호별로 부과되던 공납을 토지 결수에따라 쌀,삼베,무명,동전(당시의 화폐기능을 하던 물건들)으로 내게합니다. 여기서 양반들이 반발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토지결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면 결국 가진자가 더 낼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동법은 재산세의 개념으로 1결당 12두를 걷게 됩니다.
하지만 부정기적 공납인 별공과 진상은 존재했고 현물 납부의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중앙 정부에 올리는 상납미의 비율이 오르고 지방 관아에 있는 유치미 비율이 줄어 들어서 지방관아의 재정이 악화되어 수령 및 향리들의 농민수탈이 더욱 심화됩니다.
대동법의 영향또한 중요합니다. 현물로 납부받던것을 화폐로 받게 되니 정부는 필요한 물품을 조달할 상인을 고용하는데 그가 공인입니다. 이들 때문에 화폐사용은 더욱 증가하게 됩니다.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 하게됨에 따라 공급이 증가하면서 민영수공업이 발달하고 관영수공업이 쇠퇴하게 됩니다.
조선도 드디어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동미 집산지를 중심으로 포구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원산, 강경, 삼랑진)
운송또한 관선에서 사선으로 넘어가면서 경강상인들이 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큰흐름에서 보면 대동법의 영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제는 우리가 중세시대 이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정체성론을 부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나온 상인들을 서양식으로 표현하자면 저들은 부르주아 입니다. 서양에서도 정치에 핍박받던 부르주아들이 결국 혁명을 일으켜 근대로 나아가는 것인데 조선도 그러한 싹이 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조는 이러한 상인들과 합쳐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조사후 조선의 정치는 근대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행해 세도정치를 겪게됩니다. 정치가들은 상인들을 동반자가 아니라 수탈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조선은 중요한 시기를 놓치며 결국 일제에 나라를 빼앗깁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문제가 나오면 더 설명드리겠습니다.
(대동법을 시행하던 선혜청이 있던 자리에 남겨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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