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국가직 7급 한국사 5번 보겠습니다.
6. (가)와 (나) 사건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평서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니 관서의 부로자제와 공․사천민은 모두 이 격문을 들으라. …(중략)…조정에서 관서를 버림이 분토와 다름없다. 심지어 권세가의 노비도 서토의 사람을 보면 반드시 ‘평한(平漢)’이라고 말한다.
(나)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은 우병사 백낙신이 탐욕을
부려 침학하였기 때문입니다. 환포와 도결 6만 냥을 가호(家戶)에 배정하여 백징(白徵)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봉기했던 것입니다.
① 정약용이 유배 중 목민심서를 저술하였다.
②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③ 이승훈이 사행 중 천주교 세례를 받고 돌아왔다.
④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해설
답은 1번입니다.
(가)는 몰락 양반이자 서북지방 출신이었던 홍경래가 일으킨 홍경래의 난(1811,순조)입니다. (나)는 1862년 철종 때 임술년에 일어난 임술 농민 봉기의 시발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난이도 이면서 잘만들어진 문제입니다.
정조는 천주교에 대해서 관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신해박해 때에도 윤지충과 권상연만을 처벌하고 천주교에 대한 대규모 박해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죽고 정조의 어린 아들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영조의 어린 아내였던 정순왕후가 왕실 서열1순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정순왕후는 정적을 제거할 목적으로 신유박해(1801)을 일으킵니다. 이 사건에 연류되어 정약용은 18년간의 기나긴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에 정약용은 엄청난 양의 저술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목민심서입니다.
이승훈은 우리나라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인물입니다. 정조시기에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로 사행길을 갔다가 세례를 받게됩니다. 정약용형제들과도 교류가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신유박해 때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죽게됩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고종때 일입니다. 흥선대원군은 복고적인 인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서양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왕을 중심으로 뭉쳐 예전의 제도로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헌수가 정족사건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사건 또한 고종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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