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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국가직 7급 한국사 12번 보겠습니다.
12. 밑줄 친 ‘농서’가 편찬된 왕대의 경제생활로 옳은 것은?
각 지역의 풍토가 달라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옛글과 다 같을 수 없습니다. 이에 여러 도의 감사들이 주현의 늙은 농부를 방문하여 실제 농사경험을 들었습니다. 저희 정초 등은 이를 참고하여 농서를 편찬하였습니다.
① 칠패 시장에서 어물을 판매하였다.
② 녹비법을 활용하여 지력을 회복하였다.
③ 고구마․감자를 구황작물로 활용하였다.
④ 시전에서 남초를 거래하였다.
해설
답은 2번입니다.
자료는 세종의 명에 의해 편찬된 관찬농서인 농사직설입니다. 이책은 중국의 선진적인 화북농법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조선의 실제경험을 첨가하여 조선의 기후풍토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최초로 정리했습니다.
조선초기의 경제생활을 묻는 문제가 되겠습니다.
한양의 도성내에서 독점적으로 특정물품에 대해서 장사할 수 있는 권리인 금난전권을 부여받은 시전상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사상들이 출현하게 되면서 시전상인들과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시전상인들은 금난전권을 바탕으로 도고활동(상품의 매점매석행위)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금압에도 불구 난전들이 성장함에 따라 정조가 1791년 신해통공으로 육주비전을 제외한 나머지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을 폐지합니다. 이로써 사상들은 시전상인들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게 되었고 시전이외에 동대문 부근에 이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에 시장이 형성되게됩니다.
시비법의 발달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고려는 녹비와 퇴비 조선은 밑거름 덧거름 입니다. 녹비법은 콩과 작물을 심은 뒤 갈아 엎에 비료로 사용하는 방식이고 퇴비법은 동물의 똥오줌을 비료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습니다.
남초와 고구마는 일본으로 부터 임진왜란 이후에 수입되었고 감자는 청으로부터 수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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