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국가직 9급 한국사 15번 보겠습니다.
15. 다음 선언문을 강령으로 했던 단체의 활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
우리는 일본 강도 정치 즉 이족 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 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①민족혁명당 창당에 가담하였다.
②경성 부민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③일본 제국의회와 황궁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④임시정부 요인과 제휴한 투탄 계획을 추진하였다.
해설
답은 2번입니다.
자료는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입니다. 의열단(김원봉)의 부탁으로 신채호 선생은 조선혁명선언을 저술해줍니다.
의열단은 민중의 직접 혁명(폭력)으로 강도 일본을 구축하려한 무정부주의 단체입니다. 조선혁명선언은 외교론, 자치론, 문화운동론, 준비론(실력양성론)을 모두 비판하였습니다.
의열단(1919~35)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되어서 만들어진 단체로 만주 지린성에서 창립하여서 본부는 계속해서 이동하였습니다.
의열단은 폭력 투쟁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주어 식민 통치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국내의 애국심을 환기하여서 민중들의 봉기를 유도하려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목표는 일제요인과 민족 반역자 암살(7가살), 식민지 지배 기구 파괴(5파괴)였습니다.
활동내역으로는
박재혁(1920, 부산 경찰서), 최수봉(1920, 밀양 경찰서), 김익상(1921, 조선총독부), 오성륜(1922, 상해에서 일본대장 다나카 암살시도), 김상옥(1923, 종로 경찰서), 김지섭(1924, 도쿄 황궁으로 들어가는 이중교에 폭탄), 나석주(1926,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 주식회사)
김상옥은 최근 영화인 '밀정'에서 첫장면에 강렬하게 묘사하고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괴롭히던 종로경찰서-
하지만 의열단은 개별적 폭력 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조직적 무장 투쟁을 위해 황포군관학교(1926)에 입학하고 국민당 지원으로 조선 혁명간부학교(1932, 난징)를 설립합니다.
또한, 대중적 정당인 민족혁명당(1935)을 결성합니다.
구글의 무정부주의에 정의를보면 이렇습니다.
모든 정치 조직·권력·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는 주의. 19세기 중엽 프루동(P. J. Proudhon)을 선구자로 하여 바쿠닌(M. A. Bakunin)·크로포트킨(P. A. Kropotkin) 등이 그 뒤를 이음. 아나키즘(anarchism).
이렇게보면 의열단원들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사를 공부할때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여러 종교를 가졌었고 여러 사상들을 믿었습니다. 심지어 공산주의까지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들은 수단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우리 민족의 독립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목숨조차 수단으로 여기고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주시면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공부할때 조금 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암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여서 적어 보았습니다.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
부민단의거 참고 http://blog.daum.net/yh66s/152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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