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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국가직 한국사

2016 국가직 9급 한국사 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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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국가직 9급 한국사 6번 같이 보도록 할게요.

 

여유되는 시간에 읽어주세요.

 

 

6.개항기 체결된 통상 협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조·일 통상장정(1876) - 곡물 유출을 막는 방곡령 규정이 합의 되었다.

②조·청 수륙무역장정(1882) - 서울에서 청국 상인의 개점이 허용되었다.

③개정 조·일통상장정(1883) - 일본과 수출입하는 물품에 일정세율이 부과되었다.

④한·청 통상조약(1899) - 대한제국 황제와 청 황제가 대등한 위치에서 조약을 체결하였다.

 

 

 

 

 

 

 

 

 

 

 

 

 

해설

정답은 ①이다 방곡령에 관해 근거가 되는 조약은 조일 통상 장정(1883)이다.

 

조·일 통상장정(1876)에서 무관세와 무제한적인 곡물유출을 막기위해서 조일 통상 장정(1883)을 통해 조선은 관세조항과 방곡령 조항을 얻는다. 하지만 일본에 최혜국 대우를 내어주게된다.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1882)과 조일 수호 조규 속약(1882)로 내지통상권이 뚫리면서 청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된다.

 

개화초기에 거류지 무역형태에서는 조선의 상인들(중개상,시전 상인,객주여각,보부상)등이 일본과 청의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받아서 팔기때문에 상인들에게 이득이 되었으나 조약들로인해 청국상인과 일본상인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게되면서 상인들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이에대한 대응으로 중개상인등은 근대적 상회사설립으로 대응하고 시전상인들은 1880년대에 상권수호운동을 전개하고 1890년대에는 황국중앙총상회를 결성한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황국은 대한제국이다.

 

농촌에서는 입도선매의 방식 즉,추수하기전에 논에서 나오는 곡식의 전체를 미리 사가는 방식으로 논에서 나오는 권리를 사가는 방식으로 농민이 몰락한다. 안팔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춘궁기에 배가고픈 농민들은 당장 먹을 쌀이 없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권리를 파는것이다.

지방관들은 이에 대응하기위해서 방곡령을 선포하지만 일제는 규정에 어긋난다며 방곡령 철회와 배상금 지불을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방곡령은 시행하기 전에 한달 전에 미리 일본에 알려야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루정도 늦은걸로 말이다.

 

 방곡령이 나오던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은 공업화를 위해서 노력하던 시기였다. 바로 이전문제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10년동안 일본은 근대화를 위해서 쌀이 필요했던것이다. 왜냐하면 공업화를 위해서는 도시노동자들이 필요했는데 일본도 후발 공업화주자로서 상품의 가격이 낮아야했다. 따라서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춰야만했다. 당연하게도 이들을 먹일 쌀값도 싸져야만하는데 이것을 일본은 조선으로부터의 쌀수입을 통해 일정부분해결하려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근대화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위해서 농촌이 희생을 한것이다.

 

수공업에서는 우리는 가내수공업형태로 면제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것은 일본이 파는 영국산 면제품에 비해서 질이 떨어졌다. 당연히 상대가 안되니 자연스럽게 가내수공업이 몰락한다.

 

이렇게 80년대와 90년대초반까지 조선의 경제를 경쟁적으로 침탈하는 청일은 결국 조선에대한 확실한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일본이 이기게되지만

민비가 러시아를 끌어들이게 되면서 조선은 마지막기회의 10년을 얻게되고 고종은 이때 자신을 황제로하고 개혁을 추진하려한다. 

이때 청국과 체결된조약이 한·청 통상조약(1899)이다. 당연히 대한제국도 황제국이므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는 다르게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하게 된다. 한·청 통상조약(1899)의 한은 대한'제'국을 말한다.

 

(안중식의 조일통상장정 기념연회도)